‘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시간 생중계로 만나게 된다!’
조한우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연극을 해 왔다. 목회자가 된 후에도 그의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언제나 상황극에 가깝다. 그가 지향하는 설교는 ‘들리는 설교’가 아니라, ‘보이는 설교’다. 청각보다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설교가 그것이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스스로 저절로 알아듣게 하는 설교를 그는 평생의 숙제로 안고 살고 있다.
성경은 비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봄직한 필독서 내지는 교양도서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이 기독교의 경전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성경은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성경을 이야기로 풀어 놓은 책이 나왔다.
「만남의 축복」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읽게 되는 독자들은 이 책이 기독교 서적이라는 냄새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저 짧은 단편소설들을 엮어 놓은 것 같아서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2천 년 전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회상이 오늘날의 사회상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면서, 신기하게도 시차를 느끼지 못하고 책 속에 빠져들게 한다. 어쩌면 사람 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독자들은 작가가 설정한 상황 속에서 성경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에 간섭할 수도 있고, 말을 걸 수도 있게 된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예수님의 최측근 인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예수님의 양부모들과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이야기이다. 마리아와 요셉은 엉겁결에 예수님의 부모가 되면서 평생 맘고생을 하게 된다. 이는 어찌 보면,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애잔하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어느 부모라도 자식에 대한 헌신과 수고가 없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없겠는가? 특히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대단한 나라에서는 요셉과 마리아에 대한 연민의 마음은 더 할 수밖에 없다. 결혼이나 출산, 양육이 쉽지 않은 우리 형편에서는 요셉과 마리아를 보면, 그저 딱하기만 하다.
안타깝게도 요셉은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마리아 혼자서 그 무거운 짐을 감당해야 했으니 오죽했을까? 남들은 예수님의 최측근 인사 중에서도 가장 최측근 인사라고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부에 등장하는 열두 명의 제자들은 어찌 보면 오합지졸로 보이기도 한다. 필자는 그들을 미화하거나 두둔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둔탁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망치같은 모습의 사람들이 제각각 모여들어서 예수님의 제자군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더 악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보일 듯 말 듯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고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독자들 자신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들의 성격이나 직업, 고향이나 사상적인 배경이 다 다르기 때문에 격게 되는 어려움들은 독자들이 속한 회사나 단체의 형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조직 내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동료들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셀프 코칭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부에서는 새 시대를 바라보며, 새 시대를 소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의 관습이나 문화적인 격차로 인한 차별 등 지금 보다는 훨씬 더 심했을 것이다. 2천 년 전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몽상가였던 것은 절대 아니다. 시대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막아선 담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을 헐어 버리고, 밖으로 나오거나 앞으로 전진하게 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대한에도 여전히 벽이 있고, 담이 있다. 그것은 투쟁이나 무력 시위로 깨지지 않는다. 어차피 변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가진 작은 소망, 작은 믿음 하나로 오롯이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먼저 변하게 된다. 물질세계 속에서 순수한 영혼을 꿈꾸는 동안 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꺼질 듯 말 듯 가물거리는 등대처럼 반복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인생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3부는 고침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질병과 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 2천 년 전 유대사회에서의 질병이나 장애는 개인의 불편 뿐 아니라, 사회적인 편견과 종교적인 낙인까지도 감수해야만 했다. 그들이 겪었을 고통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알게 모르게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병상에서 투병 중인 환우들이 있고, 남들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남모르는 마음의 병과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너무 많다. 병에 대한 무지나 몰이해 때문에 기도원이라는 이름을 빌린 자들의 악행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무속 신앙이나 잘못된 치료 방법을 따랐다가 오히려 더 큰 화를 겪게 된 이들도 많이 있었다. 작가는 병에 대한 진단이나 처방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병이나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그들의 입장에서 친절하게 풀어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냥 재미로만 읽고 말 것이 아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희화화했다고 타박할 일도 아니다. 작가는 성경 속에 비춰진 인물들이 다름 아닌 바로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미천한 존재이고 가장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가장 아름답고 복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작가는 목회자로서 독자들에게 설교하지 않는다. 그냥 차분차분 이야기할 뿐이다. 설교가 식상하다고 느끼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기독교가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작가는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그 누구라도 만나주시는 분, 그 분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아무쪼록 당신에게도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소개한다.
조한우
저자는 경기도 김포 태생으로 강릉대를 졸업하고, 신협에서 근무했다. 서른세 살에 신학을 공부해서 서른 아홉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김포에서 개척교회를 하다가, 마흔 살에 경남 산청으로 내려가서 20년을 목회했다. 그리고 안동을 거쳐, 지금은 구미에서 또 다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장신대 목회전문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Th.M)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청시인을 자처하는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음유시인이다. 20년 가까이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대학 때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던 경험을 통해서 목사가 된 후에는 ‘각설이가 만난 예수’라는 제목으로 품바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성경을 쉽게 푸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부흥강사로 활동하면서도 자녀특강이나 부모특강, 역량강화특강을 하는 강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마인드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시집, 『산청시인의 행복 이야기』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